저수지 둑에 서서 흩날리는 홀씨를 보며 
                                                                                              

                                                                                                  거제시의회 의원 이상문

저수지는 큰 길 옆에도 있지만 주로 길 끝 간 데에 많이 있었습니다.
저수지의 물은 동맥을 따라서 논흙, 밭흙이라는 모든 세포에 활동의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저수지의 물이 모자라서 모내기가 힘들어 지거나, 심어 놓은 벼들이 노랗게 잎색이 변하면
농부들의 가슴이 같은 색깔로 말라 들어갑니다. 밤을 새워 물 도둑질을 하기도 합니다.

가뭄이 들어 물이 모자란다 싶을 때에는 저수지는 농부들의 발걸음을 더욱 더 불러들입니다. '내가 가진 물이 이것뿐이니 아껴 쓰고 사이좋게 나눠 쓰라'는 저수지의 소리 없는 권유를 듣고 농부들은 돌아가지만, 내려가는 그들의 마음은 전쟁터에 임하는 병사의 각오로 변합니다.

몇 번의 가뭄들은 서로 아래위로 붙어 있는 논주인들 간에 미움의 벽을 쳐 놓습니다. 그러다 가뭄이 물러간 해가 오고 비가 충분히 내려주는 때 그 벽은 빗물에 녹습니다. 전 직장에서 저수지를 관리하기도 했지만, 그 전에도 들판으로 출장 가는 날의 휴식처는 늘 인적 없는 저수지 둑이었습니다. 물이 좋아서, 인적이 없어서, 낮잠을 자든 쉬든 간섭 없어서.

계절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슬픈 저수지의 풍경을 본 날이 있습니다. 사람과 자연의 다름을 느꼈던 날이었습니다. 저수지 둑에 서 있는데 반대편 상류 쪽으로부터 식물의 씨앗들이 둑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그 홀씨들 중 거의 대부분이 수면으로 빠져버리는 것이었습니다.

땅에 뿌리 한 번 내려 보지도 못하고 저렇게 죽는구나. 저들에겐 살 궁리도 없는 걸까? 이 작은 바람에 이쪽 방향으로의 비행은 바로 죽음인데 저들은 왜 이륙을 하는 걸까? 그들이 달려 있던 비행장 같은 대공으로부터 출발하는 때 저들은 무얼 생각할까? 이 바람 크기에는 탈착되어야 하며, 날자 말자 어디든 불시착 할 것이며, 살 수 있는 땅이든, 죽어야 할 땅이든 그건 운명이라고 마음 다짐하고 비행에 나선 것일까?

혹시 그들에게는 생과 사에 대해 하나도 미련이나 집착이 없는 건 아닐까? 이 생각이 스칠 때 소스라치게 놀라는 내가 나타났습니다. 홀씨는 아무 생각 없이, 미리 죽음에 대해 초월한 채로 비행을 하다 물에 빠져 죽는데, 홀씨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나라는 사람만 슬퍼하는 바보짓을 하는 건 아닐까 ...

사람이나 동물들이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이야 미리 아는 바였지만, 저 홀씨들은 달라 보였습니다. 저 홀씨가 동물의 정자나 난자 같이 내게 보이지 않은 것은, 수많은 물고기의 알처럼 보이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하여튼 생명 있는 것들의 죽음으로 보였습니다.

그날 99% 가까이 물에 빠져 버린 그 홀씨들은 늘 내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다행히 둑을 건너온 홀씨들이 대견해서 축복해 주고 싶은 생각은 일지 않았었습니다. 나라는 인간족속만 생존함의 고마움을 모르나 싶고, 생존은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안락하고 행복한 생존만 갈구하는 내가 그 홀씨들에게 무지 철없는 자연속의 한 종자임을 자각했습니다.

낙하한 자리가 어떤 곳이든 말없이 죽는 날까지 그 땅에 뿌리박고 살아나가는 식물들이 무이라는 인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할 지 무슨 말을 해 주고 싶을 지 궁금합니다.

그 식물들의 이야기가 이럴 지도 모르겠습니다. 500원 짜리 무이씨! 당신이 태어나든 못 나든, 지금 죽든 나중 죽든, 이리 살든 저리 살든, 그건 모조리 의미 없음이오. 괜히 가치니 의미니 사색이니 그런 거 때려치우소. 살아 있다는 것만도 큰 행복을 아시오.